놉 Nope, 2022

 

DATE 2022/02/14 GENRE 미스터리, 공포
RATING ★5.0 DIRECTOR 조던 필
ACTOR 다니엘 칼루유야, 케케 팔머, 스티븐 연, 마이클 윈콧 외

 

 


 

그것은 우리 위에 있다.

거대하고, 주목받길 원하고, 미쳤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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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약을 먹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자넨 잠에서 깨어 일상으로 되돌아가 믿고 싶은 걸 믿으며 살면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는다. 나는 토끼굴이 과연 어디까지 깊은지 보여줄 걸세."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대사다. '혼돈스럽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기어코 파헤칠 것이냐, 안온하고 만족스러운 현실에 편안하게 안주할 것이냐'라는 선택지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작 중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한다. 현실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세계의 진실을 마주해 매트릭스의 세계를 벗어난 것이다. 이 '빨간 약'은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되어서 최근까지도 정말 많은 곳에 상징으로써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24년이 지난 지금, 현대 사회는 '빨간 약 과다 복용' 상태다(빨간 약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궤가 다른 비유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미디어를 소비하며 필요 이상의 진실에 관심을 가진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격언을 인용하기에 그 진실이라는 것들은 대체로 비극이므로 이는 어리석은 영웅 심리를 변명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트위터에서 본 『수전 손택의 말』 인용구가 떠올라 재인용한다. "악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놀라워하고, 인간이 얼마나 다른 인간에게 소름 끼치게 끔찍한 잔혹 행위를 직접 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들을 마주하고 계속해서 환멸스럽다(심지어 못 믿겠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라면 윤리적 또는 심리적 성년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중략) 이런 태도가 실제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목표, 방법, 계획이나 전망을 발전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들은 그저 끔찍해하면서 돌아다녔다."

 

바라지 않은 관심은 대상을 전시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원의 구시대적 형태인 미네저리가 복지를 동반한 현대 공공 동물원의 형태로 발전하며 동물들에게 '숨을 권리'가 생겨난 것처럼 어떤 것은 때로 무관심을 필요로 한다. 〈놉〉은 그 무관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주위에 무분별하게 널린 수많은 진 재킷을 보지 않을 것.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재앙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아찔한 자극인 '나쁜 기적'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으면 그 공포스러운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고. 조던 필 특유의 은유로 가득 찬 영화임에도 이러한 메시지를 코즈믹 호러와 엮어 풀어낸 부분이 직관적이고 명료하게 다가왔다.

 

전작들은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비로소 재미를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고 오락 영화로 접근하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는데, 〈놉〉은 해석이 필요한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오락 영화로도 충분히 재미있던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오락으로 즐기자니 나 또한 진 재킷으로부터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주인공들을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